[주식투자 지침서5] 주식시장의 변천사, 분석방법의 진화

주식시장의 변천시, 분석방법의 진화
 


 
1. 평택촌놈의 초보자 시절 (1989~1996년)
 
지수, 업종, 종목이 대부분 연동했던 후진국
 
당시에는 지수, 업종, 종목의 추세가 거의 대부분 동일했다. 1994~1995년에 한 번 저PER주 장세가 온 것을 제외하면 거의 그랬다. 당시에는 차트분석은 할 수도 없었고, 가치분석도 PER로만 접근했다. 그것도 지금처럼 분기 단위의 실적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1년 단위로 배포되는 책자에 의존했다. 시황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고, 개인투자자들 대다수가 초장기 또는 도박 마인드로 매매했다. 그래도 절대 가치주라고 판단되는 종목에 대한 초장기 투자자들은 결국 수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그렇게 인내심을 갖고 버틴 시람이 과연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대부분 어둠 속에서 주식투자를 하는 것과 같았다.
 


 
필자는 1989년에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 후 본격적인 연구는 1991년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증권시에서 제공되는 단말기에는 현재가와 호가동향만 있었다. 차트는 아예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 가치에 대한 평가였다.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당시에 PER가 대세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문제가 많아서 [평택촌놈 적정주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획기적으로 수정시켰다. 당시에는 주식시장이 아니라 도박장이었다. 대우그룹주 중에서는 부채비율이 2,000%가 넘은 종목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상장이 안 되거나 퇴출이 되어야 마땅한 종목도 버젓이 거래가 됐다는 것이 참 어이가 없었다.
 


 
2. 시상 초유의 IMF시절 (1997~2000년)
 
거래 급감 후 대중주와 코스닥 폭등으로 복수
 
정확하게 1997년 11월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지수는 급락했고, 1998년에 코스피는 300포인트 하락까지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단순히 지수와 주가만 하락한 것이 아니라 거래가 없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초보자들은 1998년 이전과 이후의 흐름을 모른다. 1998년까지만 하더라도 3일 결제 시스템이었다. 월요일에 주식을 매수 후 매도 또는 보유 종목을 매도하면 화요일은 절대로 거래할 수가 없었다. 수요일이 되어야만 거래가 됐다. 따라서 당시에는 초단타는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증권시가 워낙 어려우니까 현재의 시스템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그것이 1998년의 변혁이었다. 그래서 지금 투자자들은 행복하다.
 


 
덕분에 1998년 가을에 증권, 건설, 은행 세 가지 대중주가 폭등했었다. 증권이 가장 광했고, 난생 처음 은행주가 점상한가를 기록하는 상황도 목격했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난 후 1999년 5월부터 코스닥이 폭등하면서 엄청난 거래가 발생했고, 증권시들은 대박이 터진 시점이었다. 물론 키움증권이 시이버증권시를 설립하면서 수수료 저가 공세로 말미암아 현재는 대부분 수수료 수입이 급감한 상태이다. 당시에 키움증권은 현명했다.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필자는 2002년에 키움증권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홍보하기도 했었다. 웃기는 건 당시에 키움증권 소속의 수많은 애널리스트와 주식전문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시실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던 프로그램이었다.
 


 
3. 한국증시의 도약기 시절 (2001~2005년)
 
실질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이 시기에는 지수가 크게 상승하지는 않았다. 2001년 가을에 9.11 테러가 터지면서 폭락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속이 있었다. 2003년까지는 힘겨운 지수 상황에서도 상한가 종목이 정말 많았다. 당시에는 보통 하루에 코스피와 코스닥 상한가를 합치면 100개 전후였다. 약한 장세에서도 50개는 나왔고, 광한 장세에서는 150개 정도 나왔다. 그러다가 2004년 이후 본격적으로 대세상승을 시작하게 된다. 그게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2004년 8월로 기억된다. 필자는 2004년 봄에 8월부터 한국시장은 대세 상승이 시작된다고 언급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게 적중했고, 2005년에는 시상 최고의 종목 수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수에 비해서 상한가 종목 수가 너무 작다. 그래서 실속이 없습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주식시장에서 투기적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한국증시 급등과 대폭락 (2006~2008년)
 
2007년 가을 대세하락과 2008년 10월 27일 바닥 신호 예측
 
2007년까지 지수는 무섭게 상승하면서 시상 처음으로 2,000선 시대가 도래됐다. 그런데 필자는 2007년 11월에 대세하락을 선언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을 모두 다 전달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지속적인 하락을 주장하면서 남들이 모두가 1,500선 바닥을 합창할 때 유일하게 1.000선 붕괴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8년 10월 2일에 지수바닥은 10월 27일이라고 선언했다. 아쉬운 것은 이 때 필자가 파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때 파생을 했다면 하락하면서 큰 수익을 기록했고, 바닥에서 역시 대박이 터졌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가올 역시상 최고점에서는 반드시 파생에 투자할 생각이다. 필자를 오랜 시간 지켜본 분들은 고점 파악은 거의 정확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적중할 것이다.
 


 
5. 가짜 유동성 장세의 혜택 (2009~2011년)
 
경제학적 이론의 붕괴, 가치가 아닌 투기적 유동성 장세
 
원래 필자는 코스피 지수가 다시 저점을 갱신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점은 2009년 3월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최저점은 2009년 3월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지수가 덜 빠지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이 시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필자가 유일하게 대세판단에 실패한 시점이다. 저점의 시기는 적중했지만, 지수가 아쉬웠다. 문제는 미국의 경우 필자의 예상대로 2009년에 2008년 저점을 갱신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만일 필자의 조언을 미국 시장에 대입했다면 진짜 대박이 터졌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변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5년이 흘렀다.
 


 
언젠가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분할매수로 접근할 생각이다. 다만, 이번에 역시상 최고점이 찍히고 크게 한 번 하락한 후 반등이 나올 때는 과거처럼 폭등보다는 서서히 상승하는 장세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수가 역시상 최고점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파생이 좋고, 반등하기 시작하면 현물이 좋다. 다만, 과거처럼 무차별적인 상승 장세는 나타나기 어렵다. 이미 지금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 종목장세의 성격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들은 돈 벌기 어려운 장세라고 작년 가을부터 광조한 것이다. 필자는 역시상 최고점 순간까지 가능하면 방송출연이나 기타 인터뷰를 자제할 생각이다. 기회가 온다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정보전달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적중한다는 전제에서 우리 유.무료 회원들에게만 그 혜택을 돌려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드시 될 것이다.
 


 
6. 한국증시의 본격적인 디커플링 (2011~2014)
 
미국과 연동됐다면 한국은 이론적으로 2,970포인트 돌파
 
이 시기부터가 진짜 선진국 주식시장이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그저 미국만 바라보는 장세였다. 미국의 추세를 보면서 대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는 한국의 실적과 가치로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업종에 대한 차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6년 이후였지만, 이 시기에는 지수에 대한 글로벌 증시와의 차별이 시작된 것이다. 만일 한국이 미국과 동일한 추세였다면 2014년 6월 중순 기준으로 코스피는 2,970포인트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여전히 2,000선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디커플링 장세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도 같은 이유가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마치 8090시절에 묻지마 장세였다가 2000년 이후 업종과 종목이 차별화 된 것처럼 2011년 이후에는 한국의 지수 자체가 가치대로 움직인 것 뿐이다. 미국의 추세를 보면서 2012년 이후 대부분의 주식전문가들은 대세상승을 외쳤다. 그런데 정작 지수 바닥에서는 추가하락을 주장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그 이유는 그 전까지 미국의 추세와 연동됐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는 상태에서 평소대로 조언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 해서 그런 것이다. 그것을 틀린 주식전문가들은 오히려 정상이었다. 그것을 적중한 필자가 어쩌면 비정상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나 알 수 없었던 분석의 영역이었다.
 

 
7. 분석방법의 진화 – 이건 생략, 언젠가 별도로 다시 언급/공개적으로 작성하기엔 아까운 내용
 
1990년대
 
묻지마, 떴다방 주식시장
 

 
2000년대
 
차트분석은 만병통치약
 

 
2006년 이후
 
수급, 가치, 지표 반영의 시작
 

 
20011년 이후
 
철저한 디커플링의 투기적 장세
 

 

 
주식회시 평택촌놈 정오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