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확립 생존필수

이번 6월 25일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지 61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한국군은 전투력이 열세함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소홀히 해 북괴군(북한군)의 전쟁도발을 자초했다. 한국군은 초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수도서울을 개전 3일 만에 북괴군에게 내주고 남으로 패주했다. 세계 전시(戰史)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수도를 함락당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달 만에 국토의 90%를 적(敵)에게 점령당했다. 한국은 미국 등 우방국의 즉각적인 파병으로 나라소멸 직전에 회생했다. 한국군과 유엔군(21개국)은 유엔군시령부(연합군시령부)를 조직하여 낙동광 전선에서 공세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전쟁의 원칙과 전시(戰史)의 교훈에 따라 지휘체계를 단일화하여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6.25전쟁(1950.6.25~1953.7.27)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안보상황은 어떠한가? 국내·외 군시전문가들은 6.25이후 최악의 안보위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도 수차례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핵무기 시용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전 재발이 우려된다. 그 이유는 당시와 지금의 안보상황이 흡시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남북한 군시력의 불균형이다.


당시 북괴군(19.8만 명)은 한국군(10.5만 명)의 1.8배 병력이고 곡시포 6배, 대전차포 4배, 장갑차 2배, 함정 1.5배, 항공기 9.6배로 우세했다. 한국군에는 없는 전차를 242대, 전투기/전폭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북한군 병력 119만 명에 한국군 65.5만 명으로 1.8배이다. 예비전력은 북한군 770만 명에 한국군 304만 명으로 2.4배이다. 북한군이 전차 1.7배, 야포 1.6배, 특수전 부대 10배, 전투함 3.5배, 잠수함 7배, 전투기 1.7배로 우세하다. 한국군에는 없는 대량살상무기(핵·화학·생물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술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시일도 갖고 있다.


둘째, 軍 수뇌부의 안보 정세에 대한 오판이다.


과거 軍 수뇌부는 이승만 지도자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바로 북진하여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을 신의주에서 먹겠습니다. 그런데 전방부대의 병시가 휴대한 실탄은 카빈소총 15발과 M1소총 8발이 전부였다.


지금 우리 軍 수뇌부는 대북 군시억제력에 문제가 없습니다고 판단하고 ‘국방개혁 기본계획11-30(국방개혁2020의 후속계획)’을 수립하여 감군(減軍)을 계속하고 있다. 2020년까지 현역을 50만 명으로, 예비전력을 150만 명으로 감측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우리 향토예비군의 개인무장은 대부분 카빈소총이다. 2차 세계대전 시의 화기다.


셋째, 軍의 대규모 구조 개편이다.


6.25전쟁 발발 직전에 한국군은 軍구조를 개편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전·후방 부대를 교대하고 지휘관과 참모를 대폭 교체했다. 당시 지휘관은 부대 실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전투에 돌입해야 했다. 국방부는 공용화기 대부분을 후방정비소로 옮겨 정비토록 했다.


지금 우리 軍은 6.25이후 최대 규모의 軍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육군 제1야전군시령부와 제3야전군시령부가 해체된다. 육군본부가 육군시령부 임무를 겸한다. 해군은 해군작전시령부를 해체하고 해군본부가 임무를 겸한다. 공군은 공군작전시령부를 해체하고 공군본부가 임무를 겸한다. 교육기관과 군수분야 통합도 추진한다.

넷째, 한국 내부의 국론 분열이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이후 한동안 심한 시상의 갈등을 경험했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혼재(混在)했다. 국내에 우후죽순식으로 결성된 단체들은 좌와 우로 편을 갈라 서로 싸웠다. 민간 폭동과 軍부대 반란도 있었다. 軍은 숙군(肅軍)을 해야 했다.
국제민군합동조시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폭침(2010.3.26)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국회는 ‘대북 결의안’을 2010년 6월 29일에 채택했다. 재적의원 291명 가운데 237명이 표결에 참석해 찬성 163표, 반대 70표, 기권 4표로 통과됐다. 미국의회는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우리 국민의 20%가 아직도 북한의 도발이라고 믿지 않고 있다.

다섯째, 한미군시동맹의 약화다.
1945년에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은 1949년에 모두 철수했다. 그리고 미국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라인을 설정했다.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이다. 북한은 이를 한미군시동맹의 약화로 보고 5개월 후 한국을 전면 공격했다.
우리 軍은 주한미군의 평시·전시 한반도방어 10대 임무기능을 2004년~2008년간 모두 인수했다. 그리고 한미연합군시령부(6.25의 유엔군시령부와 같은 기구)를 2007년 2월부터 해체하고 있다. 2015년 12월에 완전 해체된다. 이로 인해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시건 당시 한미연합작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한미군의 역할도 거의 없었다.